죠죠의 기묘한 모험 황금의 바람 5부 스포 있음. 디아볼로의 집착과 패배에 대한 주절주절... 이런 거 똑똑해졌을 때 후딱 써놔야 한다. 안 그럼 영원히 기억 못 함.

디아볼로는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본인의 정체와 뿌리를 숨기려고 함. 철저함을 넘어서 집착에 가까움.
암살을 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엔 이 집착은 디아볼로가 마피아 보스가 되기 전부터 보였던 특성임. 여기서 디아볼로는 왜 자신의 정체와 과거를 숨기는 것에 집착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음.
근데 생각해 보면 평범한 사람들도 살다 보면 과거에 한 실수 같은 거 떠오르면 창피하고, 그 부분만 똑 떼서 지워버리고 싶고, 잊어버리고 싶고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아예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디아볼로도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디아볼로는 첫 등장부터 '이 세상에는 결과만이 남는다'라고 말함.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밖의 것들은 하찮게 여기는 것이 잘 드러나는 대사.
여기서 결과는 뭘까요? 다른 포스트에서도 말했지만 전 이게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반대라고 볼 수 있는 건 과거임.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디아볼로는 본인 과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과장을 보태서 해석하자면 양부(신부)에게 말했던 '선원'이 되고 싶다는 꿈도 육지를 떠나 바다를 항해하는 직업이니 어쨌든 고향을 뜨고 싶다는 욕망이 반영된 것으로 보임.
게다가 도나텔라와 만났던 시점은 아직 친모와 양부인 신부를 죽이고 달아나기 전인데, 디아볼로는 이때 도나텔라에게 본명인 디아볼로가 아닌 '솔리도 나조'라는 가명을 말했죠.
디아볼로는 애초에 도나텔라와 오래 만나며 연을 이어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음. 오래 만날 생각이었으면 본명을 말했어도 됐을 텐데. 디아볼로의 과거 청산은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었을지도. 과거를 싫어하는 마음이 과거를 지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뻗어져 나간 거 아닐까.
단순 은신만이 정녕 디아볼로가 원한 진실한 욕망이라면, 시간 삭제인 킹 크림슨보다는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바꾸는 시즈카 죠스타의 스탠드나 자신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크눔신같은 능력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함.
앞서 말했듯이 디아볼로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며 오점이라 생각한다고 가정하면, 왜 그렇게 정체를 숨기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간다. 디아볼로가 없애고자 하는 상황을 삭제할 수 있는 킹 크림슨의 능력까지도 전부.
결국 디아볼로는 도나텔라에게 돌아오겠다는 거짓말을 했고, 이후 친모와 양부, 자기 자신(솔리도 나조)를 비롯해 과거와 긴밀하게 관련된 사람들을 전부 죽임.
하지만 디아볼로가 자신의 과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지우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왜 도나텔라는 살려두었는지, 도피오는 왜 본인이 숨기고 싶어 했던 과거의 젊은 외형을 띄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음.

과거를 전부 지우고 싶었다면, 도나텔라까지 죽였어야 맞지 않나?
그런데 사람이 과거를 싫어해도 어릴 적 좋은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난 도나텔라가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디아볼로는 결국 도나텔라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즐겁게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도나텔라에게는 처음부터 가명을 썼고, 오래 알고 지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죽여야 할 인물로 분류하지 않은 것이라고 봄. 디아볼로는 실제로 작중에서 인격 전환을 목격한 꼬마와 도나텔라의 사진이 든 봉투를 뺏어간 택시운전사는 죽이지 않았으니까...
난 이 점이 구분없이 미래를 전부 날려버리지 않고, 디아볼로가 지우고자 하는 장면만 '선택적으로' 삭제하는 킹 크림슨의 능력에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간직하고, 싫어하는 건 없애버릴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다른 인격인 '비네거 도피오'는 왜 젊었을 적 디아볼로와 닮은 청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도피오의 외형이 젊은 이유를 사람은 과거로부터 도망칠 수 없기 때문(=과거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이라고 보겠다.
디아볼로는 자신의 정체 및 과거와 관련된 인물들을 전부 죽이고 고향까지 떠났지만, 디아볼로 자신은 완벽하게 죽일 수 없었음. 서류상으로는 죽었어도.
대신 디아볼로는 자신의 인격을 디아볼로와 비네거 도피오로 분리해서 자신을 살해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 것이다. 자주 꺼내볼 일 없는 과거의 모습만 똑 떼어낸 도피오, 그리고 나머지는 디아볼로.
디아볼로는 친모와 양부, 자신을 죽이고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좃뺑이를 치고 화살로 스탠드를 얻어 무려 이탈리아를 주무르는 마피아 보스가 됨.
그런데 사람은 과거를 숨기는 것에 한계가 있음. 작중 솔리도 나조라는 가명을 사용했음에도 사르데냐 방언을 써서 출신지를 들키기도 했고...
아무리 친모와 양부를 죽이고, 고향인 사르데냐를 떠난다고 해도 디아볼로는 디아볼로다. 그건 변하지 않음. 디아볼로가 사르데냐에서 지냈던 시간은 어쨌든 존재하니까.
그리고 이것은 디아볼로의 발목을 붙잡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한다. 그 요소는 바로 트리시.

과거를 오점으로 생각하는 디아볼로는 트리시도 당연히 없애고자 함.
트리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게다가 도나텔라/꼬마/택시운전사는 살려줬으면서 왜?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 그건 정말 말 그대로 트리시가 자신의 혈연이기 때문이라고 밖에 말 못 하겠다.
트리시는 죠죠 세계관의 모든 혈연관계를 통틀어 보았을 때도 독보적으로 아버지인 디아볼로와 정말 많이 닮았음. 머리카락 색부터 눈동자 색은 물론, 심지어 스탠드의 외형까지도.

디아볼로가 자신의 과거를 싫어한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건 일종의 자기혐오가 깔려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음. 자기만 아는 나의 아쉬운 부분, 보기 싫은 부분. 그것마저도 트리시는 전부 가지고 있다. 피가 이어진 친딸이니까. 그리고 미처 지우지 못한 과거의 파편도 도나텔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트리시는 가지고 있다.
도나텔라에 이어서 트리시의 존재는 과거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고,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를 까발리는 것이다. 그리고 디아볼로에게 이는 곧 약점임.
그렇기 때문에 디아볼로는 트리시를 사랑할 수 없는 거다.
따라서 디아볼로는 트리시를 제거하고, 배신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도피오의 모습으로 직접 움직이는데, 이때 점쟁이를 만나 예언을 듣는다. 예언의 요지는 '이중인격이라는 비밀을 지키는 한 디아볼로는 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후 디아볼로는 채리엇 레퀴엠으로 인해 도피오와 분리되고, 도피오는 미스타의 총에 맞아 죽는다.
디아볼로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죠죠 세계관은 운명이 절대적이라 애초에 거스를 수도 없고, 거스르려 해봤자 좆된다.
여기서 이미 디아볼로의 패배가 예정됨.
왜 하필 이중인격이 분리되어 각각 존재하게 되었을 때 디아볼로가 패배하게 되느냐는 사람은 과거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죠죠에서는 결과가 아닌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는데, 이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과거에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과 선택에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함.
내가 좋아하는 나의 모습과 추억,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과 실수는 떼어내려야 떼어놓을 수 없는 거고, 설령 진짜 떼어놓을 수 있다고 쳐도 더 이상 그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살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딸인 트리시를 죽이려 하고, 과거 자신의 모습을 한 도피오와 분리되었을 때 디아볼로는 패배한 것이다.
디아볼로가 과거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트리시를 살려두었다면... 부차라티의 배신이 앞당겨지지도 않았을 테고, 적어도 골익레당하진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
챤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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